<서울의 봄>에 대한민국에선 어떤 일이?

씽크누리

최근 극장가에서 1979년 12.12 군사 반란 사태를 모티브로 한 <서울의 봄>이 '천만 영화'대열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지 불과 50일도 채 안돼 하나회 소속 정치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하는 장면을 잘 그려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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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전두환 등 정치군인이 정권을 장악했던 1980년 5월 17일 전후를 의미하는데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무르익던 짧은 시기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서울의 봄> 시기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날짜로 알아 본 서울의 봄입니다.

1979년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이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4월 13일 YH 무역 종업원들이 사측의 폐업에 항의해 농성을 벌이면서 시국이 뒤숭숭했고 8월 11일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YH 사건이 터집니다. 10월 4일에는 여당의원 159명이 단독으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을 제명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갑니다. 10월 7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10월 16일 이른바 부마항쟁 사건이 발발하게 됩니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에게 10월 26일 암살당하고 계엄령이 발동됩니다.

최규하 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취임했지만 권력의 맛을 본 당시 하나회 소속 정치군인들은 반란을 획책하고 결국 12월 12일 정승화 참모총장을 연행하면서 권력을 하나씩 장악하게 됩니다. 12월 27일 최규하 대통령이 1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이미 중요한 의사 결정은 정치군인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민주화에 대한 각계의 열망에 힘입어 대학교 총학생회가 부활했으며 민주화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그러나 1980년 4월 11일 당시 부총리였던 신현확 부총리는 학원 소요로 계엄령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발표하게 되며 이는 계엄 철폐라는 국민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됩니다.

5월 8일에는 전국 각지 대학생 시국성토대회 개최되고 5월 15일 서울지역 35개 대학생 10만 명이 서울역에서 연좌 농성을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토론회를 거친 후 서울대 총학생회가 해산을 발표하면서 이른바 서울역 회군 사태가 터지게 됩니다. 그러자 계엄군의 잔악한 탄압이 시작되는데 5월 17일에 정부는 계엄령을 유지하는 한편 주요 대학생 대표자들을 속속 연행하기 시작합니다.

5월 18일에 광주에서 시위가 벌어지면서 광주항쟁이 발발하고 5월 27일에 결국 많은 희생을 치르고 광주민주화운동은 계엄군들의 군화발에 멈추고 맙니다.

이후 전두환 등 정치군인들의 시나리오대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가 발족하고 전두환은 육군 대장으로 전역하더니 결국 9월 1일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5공화국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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