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는 어느 공무원의 삶(1978년)

최근 5급 신임사무관 임명식에서 대통령이 공무원 보수 문제에 대해 "돈을 벌려면 기업으로 가거나 창업하라"는 다소 단호한 답변을 내놓은 것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처럼 공무원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 공무원들 사이에서 낮은 급여를 이유로 한 이직이 늘고,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낮아지는 현상은 이미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생활고는 비단 현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1978년 12월 5일 자 조선일보 기사에는 당시 공무원들이 겪었던 현실적인 어려움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상남도 농수산통계사무소 거제 출장소의 서기였던 장이수 씨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1978년 당시 장이수 서기의 월급은 3만 2천 원이었습니다. 그는 30만 원짜리 적금에 가입하여 매월 2만 3천 원을 저축하고, 남은 1만 원으로 한 달 생계를 꾸려야만 했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그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세를 든 집의 50평 채소밭에 새벽과 저녁 시간을 이용해 채소를 심어 부수입을 얻었고 일요일에는 10리 떨어진 산에서 버섯 재배용 원목을 베어주고 품삯을 받는 등 부업을 통해 생활비를 보태야만 했습니다.
과거 공무원의 삶은 안정성이라는 명성 뒤에 숨겨진 고단한 현실이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공무원은 고용 안정성과 든든한 연금 및 복지 혜택, 그리고 높은 사회적 신뢰를 받는 직업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낮은 보수, 경직된 조직 문화, 과도한 업무 및 악성 민원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공통적인 사회적 과제임을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