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많은 대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난에 허덕이지만 여전히 곤궁의 시대를 살았던 1960년대에도 취업은 만만찮은 현실이었습니다. 당시 대학교를 '고등유민양성기관' 이라고 꼬집기도 했지만 비싼 등록금을 대느라 애지중지하던 소까지 팔아야 했기에 '우골탑'이라 부르던 시절입니다.
음악은 시대를 담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1960~70년대 대한민국에서 노래는 단순한 예술이나 즐길 거리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 하나, 가사 한 구절조차 국가의 관리와 통제 아래 놓여 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사가 너무 슬퍼서 패배주의를 부추긴다", "공법에 맞지 않게 왜색 띤 창법을 썼다" 심지어 "노래가 너무 저속하다"는
1959년 2월 1일, 새해가 막 시작된 겨울 《조선일보》를 펼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기사가 있었습니다. "결혼한 사람이 독신자보다 오래 살고 더 행복하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던 1950년대 말, 해외의 최신 통계 연구를 바탕으로 '결혼이 오래 사는 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소개한 이 기사는 당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당시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