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 경성에 거주했던 빈민들 실상은?

씽크누리

일제 치하 암흑기 시절에 조선의 백성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궁핍한 생활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부실하지만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동아일보 1923년 1월 25일자 신문에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경성부조사계’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양성에 거주하는 30만명의 인구 가운데 약 5%인 1만5천여명이 비참한 생활을 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3,500여호에 1만5천여명의 경성시민이 한달에 30원 이하의 생활비로 살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1920년대 1원 가치로 현재 기준으로 1~2만원이라고 했을 때 현재 기준으로 한달에 60만원 이하의 생활비로 근근이 생활을 영위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들 빈민들은 번화가나 시내에서는 터전을 잡지 못하고 한강변이나 산구석에 거주했으며, 이마저도 힘든 빈민들은 무너진 성벽밑이나 언덕밑에 움막을 치고 생활했습니다. 한 겨울에 추위를 피하는 건 고사하고 하루에 한끼로 연명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경성시내에서도 특히 광희이정목(현 서울 중구) 일대에 220호 가구에 1천여명의 빈민들이 밀집돼 있어 가장 많은 서민들이 몰려 있었으며, 용산 서부이촌동에도 220호 가구에 800여명이 거주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시대 경성부내 빈민인구가 1만5천여명이었다는 동아일보 1923년 1월 2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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