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거주 조선인 재산은 일본인의 1/5 수준
1925년에는 일본의 본격적인 침탈이 이어지면서 경제적 수탈도 심해지던 시기입니다. 당시에 우리 조선 땅에 대거 일본인들이 들어왔는데 이들은 짧은 기간에 일본 총독부의 지원을 받고 선조들에 비해 많은 재산을 축적했습니다.
동아일보 1926년 1월 16일자 신문에 보면 당시 경성 인구는 28만 8,260명입니다. 경성에 있는 토지나 건물, 각종 현금과 가구, 기계설비 등 모든 부동산, 동산을 합친 자산은 4억 455만 96원. 당시 기록에 일본 전체의 자산규모는 1,019억 7,748만 원. 우리 조선의 전체 자산규모는 일본의 1/230 수준이라고 합니다.
특히 경성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평균 1호당 자산규모는 350원인 반면 일본인은 그 5배 가량인 1,700원이었습니다. 특히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보면 일본인은 평균 500원을, 조선인은 100원, 서양인은 1,000원의 현금을 보유했습니다.
경성 시내 제일 부자는 일본인 나카무라 사이코라는 사람인데 그의 재산은 1,000만 원 이상었다고 하네요. 조선인 제일 부자는 민영휘이며 그의 재산규모는 당시 왕실 재산과 맞먹었다는 기록입니다.
명성황후의 15촌 조카인 민영휘는 관직에 있을 때 부정부패와 수탈, 친일로 모은 재산을 잘 불려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됩니다. 그 당시 기준 6,000만 원, 현재의 1조 단위를 넘기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재산을 축적하게 되죠. 귀족 출신 중 유일하게 대 자본가로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 '권력형 부정축재자'입니다. 상업은행의 전신인 천일은행과 휘문고의 전신인 휘문의숙을 설립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진:민족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