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를 뒤덮은 계(契) 사기

지금도 그렇지만 계모임이 파탄 나면서 가정이 풍비박산 난 경우가 많은데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인 1980년에는 계모임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동아일보 1980년 11월 14일 자 기사에 따르면 당시 대표적인 비리와 폐습으로 곗바람을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전 국민이 70%가 계에 가입했다는 통계도 있는 것을 보니 계가 우리 사회에 만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80년 한국 사회에서는 오랜 세월 서민 금융과 상부상조의 역할을 해왔던 ‘(契)’가 급격히 변질되며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본래 계는 담보 능력이 부족한 서민들이 서로의 신용만을 바탕으로 목돈을 마련하던 전통적 금융 방식으로 신라시대 향도계와 가배계에서 그 기원을 찾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970년대 말까지도 전체 가구의 약 70%가 계에 참여할 정도로 보편적인 생활문화였습니다.

그러나 고도성장기였던 197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과 사치 소비를 중심으로 한 투기 열풍이 확산되면서 계는 점차 상부상조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고리채나 투기성 자금 운용의 통로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복부인들의 부동산 투기가 정부 규제로 막힌 뒤에는 거액 계가 우후죽순처럼 조직되었고 1980년 전후로 전국에서 ‘억대 계 파동’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는 서울 여의도에서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던 한 주부가 여러 개의 계를 이중·삼중으로 꾸며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약 7억 원을 가로챈 사건이 있습니다. 피해자는 수십 명에 이르렀으며 상가 운영자뿐 아니라 고학력 젊은 주부들까지 대거 피해를 입었습니다. 계 하나가 깨지면 함께 얽혀 있던 다른 계도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이어졌고 계파동은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자살 사건 등 심각한 사회적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당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균형과 사회 전반의 불신 풍조가 빚어낸 결과로 분석했습니다. 제도권 금융의 문턱이 높아 서민들이 계에 지나치게 의존해야 했던 현실, 고도성장 뒤에 남은 빈부격차, 인플레이션과 고리채 확산, 허영과 사행심의 만연 등이 계를 사기 수단으로 변질시킨 요인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경제 구조가 만든 왜곡된 금융 관행이 해방 후에도 잔존해 계의 변형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평가했습니다.

전문가와 관계자들은 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신뢰의 붕괴과도한 경제적 욕망이 계를 망가뜨렸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제도금융의 접근성을 높이고, 주부 경제권 과열을 부추기는 정책을 완화하며, 건전한 상부상조 문화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됐습니다. 결국 계파동은 단순한 사기 사건을 넘어, 당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던 경제적·도덕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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