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시절을 구가하던 일본의 대표기업들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출발한 일본 경제는 불과 한 세대 만에 세계 경제를 위협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1970년대 일본 경제의 성장 뒤에는 전쟁 전 재벌의 틀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대기업 집단인 게이레쓰(계열·系列)가 있었습니다.
1975년 영국 경영컨설팅사 도드웰(Dodwell)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당시 신문에 소개된 내용을 살펴보며 일본 기업집단이 어떻게 성장했는지와 그 과정에서 어떤 한계를 안고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전후 일본 경제의 성장 동력과 5대 기업집단
한국전쟁 특수 등을 발판 삼아 고도성장기에 진입한 일본은 1970년대 중반 대기업집단을 필두로 글로벌 선진국 대열에 본격 합류했습니다.
▪ 글로벌 신화 형성: 1975년 도드웰 보고서에 따르면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 등 일본의 유력 5대 기업집단은 단일 단위가 아닌 집단 전체 매출 규모에서 이미 서방 주요국의 대형 다국적기업들을 압도했습니다.
▪ 미쓰비시 vs 듀폰: 미쓰비시그룹의 1974년 매출은 18조 8,420억 원으로 당시 세계적인 미국 화학기업 듀폰(12조 6,180억 원)을 크게 제쳤습니다.
▪ 스미토모 vs 엑슨: 스미토모를 비롯한 다른 집단 역시 당시 세계 최대 석유기업이었던 미국 엑슨(Exxon)과 어깨를 견줄 만큼 거대한 매출 덩치를 자랑했습니다.
▪ 효율적 인력 운용: 서방의 대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다수의 계열사를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인력 및 조직을 상대적으로 효율적으로 경영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전쟁 전 '재벌'과 전후 '게이레쓰'의 결정적 차이
1970년대 일본의 대기업 집단들은 과거와 같은 이름을 사용했지만 실제 운영 방식과 지배구조는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 점령정책과 재벌 해체: 종전 후 미국 주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GHQ)는 지주회사를 강제 해체하고 재벌가의 주식을 처분했습니다.
▪ 새로운 재결합: 법적으로는 서로 독립된 기업들이었지만, 주거래은행의 자금 지원과 종합상사의 해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다시 긴밀하게 연결됐습니다. 여기에 과거 재벌 시절부터 이어진 인적·거래 관계와 기업 간 주식 보유가 더해지면서, 전후 일본의 독특한 기업집단인 '게이레쓰'가 형성됐습니다.
막강한 국가 경제 영향력
이들 기업집단이 일본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습니다.
▪ 극소수의 독점: 조사 대상이 된 주요 계열기업 수는 일본 전체 회사 수의 단 0.64%에 불과했습니다.
▪ 증시 지배력: 이 중 686개 기업이 일본 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전체 상장주식 시가총액/물량의 40% 이상을 독식했습니다.
▪ 양날의 검: 일본의 빠른 경제성장을 이끈 핵심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독점금지법 위반 논란과 경제력 집중 문제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외화내빈
매출과 고용 규모는 서방 기업을 압도했지만 정작 기업의 내실을 나타내는 수익성(이익률)과 자본 효율성에서는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 9개 분야 최고 기업의 열세: 주요 9개 사업 분야를 비교한 결과 일본 기업집단 내에서 가장 성과가 뛰어난 계열사조차 글로벌 선도 외국기업의 수익률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철강 산업 순이익률 비교 (1974년 기준):
▪ 미국 U.S.스틸: 16.9% (압도적 내실)
▪ 영국 브리티시스틸: 3.2%
▪ 일본 신일본제철: 2.0% (최하위 수준)
1970년대 일본식 경영 모델의 본질
당시 일본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높은 이익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1.규모의 경제와 시장점유율: 이익을 깎아 뼈를 깎는 가격 경쟁을 하더라도 매출 확대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2.장기적 협력 생태계: 은행-상사-제조업체 간의 안정적인 상호주식 보유와 고용 안정(평생고용)을 바탕으로 단기 이익에 연연하지 않는 장기 투자가 가능했습니다.
3.든든한 금융 지원: 주거래은행이 든든한 자금줄 역할을 해주었기에 낮은 이익률 속에서도 대규모 생산 설비를 지속해서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 일본 기업집단은 수익성은 높지 않았지만, 기업 간 긴밀한 협력과 큰 규모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훗날 198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가 커지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