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수재들이 많다? -1985년

1980년대,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도는 그저 귤 향기 가득한 신혼여행지나 먼 바다 건너의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겨울, '대입학력고사' 성적표가 발표될 때면 대한민국 교육계의 시선은 일제히 남쪽 끝 섬으로 향했습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인 서울과 경기 지역을 제치고, 인구 대비 고득점자를 쏟아냈던 제주의 저력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그 시절, '개천에서 용 나던' 마지막 황금기였던 1985년 경향신문 1월 5일 자에 제주 교육의 풍경을 되짚어보았습니다.

340점 만점의 벽, 그 높은 문턱을 넘은 섬 소년들

당시 대입학력고사는 340점 만점의 4지선다형 시험이었습니다. 지금의 수능과는 방식이 달랐지만 변별력만큼은 매우 높았습니다. 소위 'SKY'라 불리는 최상위권 대학, 특히 서울대학교에 발을 들이려면 최소 300점이라는 마의 고지를 넘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1985년 전국의 수험생 70만 명 중 300점을 넘긴 이는 단 2,400여 명. 비율로 따지면 0.34%라는 극소수의 엘리트만이 차지할 수 있는 점수였습니다. 하지만 제주의 기록은 숫자로 증명되었습니다. 같은해 제주도 수험생 중 300점 이상 고득점자 비율은 0.64%. 전국 평균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였습니다.

불시험도 물시험도 뚫어낸 '제주 돌풍'

제주의 기세는 시험의 난이도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 1982년 '불시험': 전국 고득점자 비율이 0.14%로 곤두박질칠 때도 제주는 0.16%를 유지하며 평정심을 지켰습니다.

· 1983년 '물시험': 변별력이 낮아져 점수가 인플레이션 되던 때, 전국 평균(0.98%)을 가뿐히 넘긴 1.25%의 비율로 격차를 벌렸습니다.

이러한 집단적 성취는 개인의 영광으로도 이어졌습니다. 1982년, 제주제일고 출신의 원희룡이 전국 수석을 차지하며 전국을 놀라게 하더니, 1985년에는 같은 학교의 송현주가 자연계 수석을 거머쥐었습니다. '제주제일고'라는 이름이 전국구 명문고로 이름을 날리던 화려한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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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교육만이 계층 이동의 유일한 사다리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 절박함이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학업 성취도로 나타난 것이죠."
- 80년대 당시 교육 관계자의 회고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균등한 열망'에서 찾습니다. 당시 제주는 타 지역에 비해 빈부격차가 적었고 공동체 의식이 강했습니다. "옆집 순이도 공부해서 서울 갔다더라"는 소식은 온 마을의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척박한 땅에서 자식만큼은 육지로 보내 번듯하게 키우겠다는 제주 부모님들의 뜨거운 '교육열'이 바닷바람보다 매서웠습니다. 귤 농사를 짓고 물질을 하면서도 자식의 문제집 한 권, 등불 기름값만큼은 아끼지 않았던 헌신이 일궈낸 결과였습니다.

1980년대 제주가 보여준 학력고사의 기적은 단순히 점수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변방의 소외감을 실력으로 극복하려 했던 섬사람들의 의지였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입시 제도는 바뀌었지만 '교육'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 했던 그 시절 제주의 뜨거움은 여전히 기록 속에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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