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시대 -1980년대
"통장에 10억쯤 있고, 아파트는 30평대 이상은 돼야 중간은 가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다소 팍팍하고 물질적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산업화의 열기와 함께 막 삶의 여유를 찾아가던 1980년대 초 대한민국 국민들이 꿈꾸던 '보통사람(중산층)'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정치적 구호로 익숙해진 '보통사람'이라는 표현은 사실 거창한 부나 사회적 명예보다는 가족과의 행복, 따뜻한 사랑, 그리고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아우르는 따뜻한 희망의 단어였습니다.
1981년 9월 조선일보에 소개된 월간지 《샘터》의 대규모 인식 조사를 통해 그 시절 우리 부모님과 선배 세대가 가슴속에 품었던 '진짜 보통사람의 삶'을 다시 들여다봅니다.
1만 3천 명의 목소리로 들어본 1981년 '중산층'의 초상
1981년 월간지 《샘터》는 20세부터 40세까지의 국민 1만 3,028명을 대상으로 중산층과 보통사람의 삶에 대한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인터넷이나 전화 조사가 없던 당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작업이었습니다.
조사 결과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정신적 만족'과 '가족중심주의'였습니다. 엄청난 부자가 되기보다는 서민보다 조금 더 안정적인 경제 기반 위에서 사랑과 행복을 누리는 삶, 열심히 일하면서도 인생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삶이 당시 우리 국민이 정의한 보통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돈보다 사랑과 자녀! 남녀가 꼽은 행복의 조건
행복을 판단하는 기준에서 당시 국민들의 가치관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남녀 모두 경제적 부나 사회적 출세보다 사랑과 가족을 압도적인 1위로 꼽았습니다.
▪ 남성의 행복 기준: 사랑 > 명예 > 돈 > 자녀
▪ 여성의 행복 기준: 사랑 > 자녀 > 명예 > 돈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사랑'은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남성은 가장으로서의 사회적 명예와 경제력을 그 뒤로 꼽은 반면 여성은 자녀의 양육과 성장에 더 큰 가치를 두었습니다. 남녀 모두에게 '돈'은 행복의 절대적 조건이라기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습니다.
팍팍했지만 희망이 있던 경제 생활
당시 보통사람들의 주거 및 경제적 여건은 내실이 탄탄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거 형태: 자가 52.4%, 전세 39.0%, 월세 8.6%
▪ 현재와 비교해 보아도 자가 소유 비율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비교적 높았습니다.
소득 및 저축: 한 달 평균 수입은 11만 원 ~ 30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 주목할 점은 연평균 60만 원 이상을 저축한다는 응답이 많아 소득 대비 저축률이 매우 높았다는 사실입니다. 열심히 모으면 내 집을 마련하고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고성장 기회의 시대상이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퇴근 후의 피로 해소법: 음악과 가족이 주는 위로
하루 근로 시간은 대부분 8시간이 기준이었습니다.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친 뒤 피로를 푸는 모습에서도 남녀의 차이와 비슷한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 남성: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 > 음악 감상 > TV 시청 > 약주 한 잔 > 운동
▪ 여성: 음악 감상 >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기
남성들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가장 큰 위안을 얻었고 여성들은 음악을 들으며 정서적인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화려한 취미나 소비 활동보다는 집 안에서 누리는 소박한 휴식이 일상 피로의 가장 좋은 약이었습니다.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미래관 질문이었습니다.
▪ 여성의 41.8%, 남성의 32.8%가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고 응답했습니다.
▪ 그 뒤를 이어 "돈을 더 벌고 싶다", "자녀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는 응답이 나타났습니다.
산업화 시대를 묵묵히 견뎌온 우리 국민들이 단순히 '생존과 축재'에만 매몰되지 않고 개인의 행복과 인생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물질의 시대에 되새겨보는 '보통사람'의 진짜 의미
1981년 9월 조선일보 기사에 담긴 보통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던짐을 줍니다.
당시의 '보통사람'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풍요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가족을 사랑하고, 성실히 저축하며, 일상 속 작은 즐거움을 아낄 줄 아는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수치로 평가되는 자산의 규모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행복의 깊이를 더 소중히 여겼던 1980년대 초의 가치관은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