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당시 대학생들의 종교관은?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격동의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당시 지성 집단이었던 대학생들은 과연 삶과 인간, 그리고 신에 대해 어떤 고민을 품고 있었을까요?
1981년 10월, 한국대학생선교회(CCC)는 전국 24개 지역 129개 대학의 청년 1만 2,966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대학생 종교의식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군사정권의 그늘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청년들이 느낀 도덕적 위기의식, 사후세계와 인류의 종말에 대한 솔직한 고백, 그리고 남녀 간에 나타난 선명한 종교관의 차이는 단순한 통계 자료를 넘어 '1981년 청년 지성들의 내면 초상화'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청년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주요 조사 결과를 주제별로 재구성했습니다.
인간의 Evil(악)과 '원죄'의 뿌리
폭력과 전쟁, 살인 등 인간이 저지르는 수많은 악행의 배후를 대학생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당시 청년 다수는 인간 내부의 치명적인 결함, 즉 '원죄(Original Sin)' 개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 원죄 인정 (긍정): 전체 응답자의 약 40%가 인간 악행의 배후에 원죄와 같은 죄의 뿌리가 존재한다고 응답했습니다.
▪ 성별 차이: 여학생의 42.95%가 원죄 개념을 받아들여 남학생(37.15%)보다 원죄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식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 부정 및 유보: '원죄와 상관없다'는 부정 응답은 34.79%(남 39.22%, 여 29.51%), '잘 모르겠다'는 무응답/유보는 25.41%(남 23.63%, 여 27.54%)로 집계되었습니다.
대학생 종교 보유 실태: 일반 사회와의 온도 차
당시 대학생들의 종교를 가진 비율은 기성세대나 일반 대중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가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 기성세대 vs 대학생 종교 보유율 비교
◎ 지역과 성별이 만든 선명한 격차
▪ 성별 격차: 전체적으로 여학생의 종교 보유 비율(58.10%)이 남학생(47.67%)보다 10.43%포인트 높았습니다.
서울 대학가의 유별난 여학생 종교율:
▪ 서울: 남학생 42.14% vs 여학생 64.14% (격차가 무려 22.00%포인트에 달함)
▪ 지방: 남학생 47.67% vs 여학생 56.54% (서울에 비해 남녀 격차가 상대적으로 완만함)
※ 기성세대의 80% 이상이 종교를 가졌던 것에 비해, 비판적 지성을 갖춘 대학생 집단에서는 무종교인의 비중이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컸습니다. 이러한 무종교 청년층의 증가는 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개신교·천주교·불교·원불교 등 다양한 학원 선교단체들이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성은 '불교', 여성은 '개신교·천주교'
현재 신앙을 가지고 있거나 향후 종교를 선택할 경우 어떤 교단을 택할 것인가에 대한 조사에서는 일반 대중과 선호 순위가 다르게 나타났으며 성별에 따른 뚜렷한 취향 차이도 확인되었습니다.
◎ 교단별 선호도 및 일반인 통계 비교
▪ 지성인 집단의 서구 종교 선호: 일반 사회에서는 불교(40.3%)가 전통적 대세였으나 대학생 집단에서는 개신교(31.48%)가 근소하게 불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천주교 선호도(20.45%)는 일반인 통계(4.3%)에 비해 높았습니다.
▪ 성별 선호 종교의 갈림길: 남학생은 전통적인 불교를 가장 선호한 반면 여학생은 개신교와 천주교 등 그리스도교 계열에 강력한 선호도를 보였습니다. 특히 천주교의 경우 여학생 선호도가 남학생보다 8.38%포인트나 높았습니다.
사후세계·종말론·지성사적 성인(聖人)에 대한 인식
◎ 내세(사후세계)에 대한 신앙
종교를 가지고 있는 대학생이라 할지라도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은 절대적이지 않았습니다.
▪ 존재 인정: 45.38% (여학생 49.12% > 남학생 42.39%)
▪ 존재 부정: 20.28%
▪ 잘 모르겠다 (유보): 34.34%
◎ 인류 종말론에 대한 의식
▪ 종말 임박 느낌: 29.29% (청년 10명 중 3명은 세기말적 종말의 위기의식을 느낌)
▪ 그렇지 않다: 40.12%
▪ 잘 모르겠다: 30.59%
인류 정신사에 가장 영향을 미친 인물 (총 16,988표, 복수응답)
대학생들이 꼽은 '인류의 도덕적·정신적 스승' 순위는 이들이 선호하는 종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1위. 예수 (6,003표)
2위. 석가모니 (2,151표)
3위. 공자 (1,455표)
4위. 소크라테스 (925표)
5위. 마호메트 (164표)
"결혼 상대의 신앙이 중요하다"
미래의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상대방이 종교를 가지고 있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대학생들의 가치관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 종교인 배우자 선호: 전체 응답자의 42.40%가 종교를 가진 배우자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 성별 차이: 여학생(43.42%)이 남학생(41.54%)보다 종교인 배우자를 희망하는 비율이 1.88%포인트 높았습니다.
▪ 지역별 차이: 지방 대학생(40.50%)보다 서울 지역 대학생의 종교인 배우자 선호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1981년의 이 설문조사는 청년 지성인들이 지닌 성별에 따른 감수성 차이, 전통 종교(불교)에서 서구 종교(개신교·천주교)로의 과도기적 이동, 그리고 기성세대 대비 높은 무종교 비율을 대변해 줍니다.
청년 10명 중 4명이 인간의 죄의 뿌리와 원죄를 고민하고 종말을 생각하며 배우자의 종교를 중요하게 여겼던 1981년 가을의 기록은 80년대 한국 청년 문화와 종교 지형도를 이해하는 매우 귀중한 사료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