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연예인 인기 순위
1978년, 인터넷 검색량도 SNS 팔로워도, 실시간 동영상 조회 수나 클립 영상의 조회 수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대중이 누구에게 열광하고 누구를 가슴 깊이 신뢰하는지 알아낼 수 있는 수단이라곤 길거리에 나가 직접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뿐이었습니다.
바로 그해, 광고회사 종합기획은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시도를 단행합니다. 이름하여 '인기 연예인 호감도 조사'였습니다.
실시간 데이터가 없던 시절, 사람들이 직접 꼽은 이 명단은 단순한 인기 순위가 아닌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미리 보여준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970년대 후반 한국 대중문화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이미 예견되어 있던 '국민 부부'의 운명
조사 결과, 남녀 호감도 1위의 영예는 각각 배우 최불암과 김혜자에게 돌아갔습니다.
흔히 많은 이들은 두 배우가 1980년부터 방송된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의 김회장 부부로 수십 년간 호흡을 맞추며 비로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아버지'와 '국민 어머니'의 반열에 올랐다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 1978년의 기록은 기존의 상식을 기분 좋게 뒤엎습니다. 드라마가 첫 방영을 시작하기 2년 전, 이미 서울시민들은 남녀를 통틀어 가장 호감 가는 배우 1위로 두 사람을 꼽고 있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작품의 큰 성공 덕분에 국민적 사랑을 받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대중에게 친근하고 믿음직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훗날 한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수 부부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1978년의 작은 설문조사는 훗날 한국 방송사를 대표하는 이야기가 될 조짐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남성 연예인 Top 10
남자 연예인 호감도 상위권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인기 연예인의 범위가 지금보다도 다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기자뿐만 아니라 희극인, 가수, 방송 진행자(MC) 등 여러 분야의 연예인들이 고르게 사랑받았습니다.
▪ 최불암 (1위): 독보적인 존재감과 특유의 따뜻하고 묵직한 신뢰감으로 남성 부문 정상에 올랐습니다.
▪ 곽규석 · 구봉서 · 배삼룡: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를 일구어낸 전설적인 희극인들입니다. 팍팍했던 시절, 국민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건네며 대중적인 호감도를 극대화했습니다.
▪ 송창식: 독특한 음악적 세계관과 압도적인 가창력, 특유의 기인 같은 매력으로 70년대 청년 문화와 대중 음악계를 동시에 사로잡은 가수의 대표주자였습니다.
▪ 허참 · 송해: 소탈하면서도 매끄러운 진행 능력으로 대중과 호흡했던 방송인들입니다. 이들은 이 조사 이후에도 수십 년간 전국민의 안방을 책임지는 '국민 MC'로 대활약하게 됩니다.
▪ 이낙훈 · 이덕화 · 박근형: 강렬한 연기력과 선 굵은 매력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주름잡던 명배우들입니다.
특히 송창식, 이덕화, 박근형과 같은 이름들은 1978년 조사 이후 거의 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대중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으며 현역으로서의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1978년 당시 대중이 보낸 안목과 애정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입증해 줍니다.
여성 연예인 Top 10
여성 연예인 부문 역시 1970년대 후반 한국 영화와 TV 드라마, 라디오 등 대중매체의 중심에 서 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 김혜자 (1위): 특유의 섬세한 연기력과 안아주는 듯한 따뜻한 이미지로 여성 연예인 최고 호감도를 기록했습니다.
▪ 강부자 · 사미자: 당시부터 푸근하고 친근하며 높은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로 대중과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했던 배우들입니다.
▪ 정윤희 · 유지인: 1970~80년대 한국 영화계와 방송계를 그야말로 폭풍처럼 흔들었던 '여배우 트로이카'의 핵심 인물들입니다. 화려한 스타성과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 김자옥: 특유의 사랑스럽고 친근한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으며 이후 수십 년 동안 드라마와 예능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 고은아 · 장희은 · 홍세미 · 정소녀: 70년대 후반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톱스타들이었습니다.
1978년 종합기획의 이 조사가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흥미롭고 의미 있는 자료로 남아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바로 대중적 호감의 놀라운 지속성입니다.
최불암, 김혜자를 비롯해 송창식, 이덕화, 박근형, 강부자 등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인물 대부분은 한철 반짝이는 스타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끊임없이 자기 분야를 개척하고 대중적 이미지를 견고히 구축하며 한국 대중문화의 거장이자 산증인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둘째는 역사적 상징성과 운명적 순간입니다.
1978년 당시 아무런 연관성 없이 각각 남녀 호감도 1위를 차지했던 최불암과 김혜자가 불과 2년 뒤 《전원일기》라는 대작에서 만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굳건한 장수 부부 캐릭터를 완벽히 완성해 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1978년에 시행된 이 소박하고 이색적인 설문조사는 단순한 과거의 통계 수치가 아니라 향후 펼쳐질 대한민국 대중문화사의 가장 찬란하고 거대한 한 장면을 미리 엿보게 해 준 훌륭한 복선이자 기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