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최고의 인기 탤런트 최불암

"시대가 바뀌고 미디어 환경이 격변해도 한 세대 전체가 공통으로 가슴속에 묻어둔 단 하나의 '얼굴'이 있습니다. 엄격하지만 속정 깊은 눈빛, 낮고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한국인의 삶과 한숨을 품어 안았던 배우. '국민 아버지' 고(故) 최불암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반세기 넘게 안방극장에 남긴 묵직한 온기는 여전히 국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파고듭니다."

50년 전 이미 증명된 '세대 초월'의 인기도

최불암이라는 이름이 가진 대중적 영향력은 결코 우연이나 세월의 덤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인 1977년, 홍보·조사 전문 기관인 '리스 피아르'가 여성 약 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TV 탤런트 선호도 조사' 결과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당시 조사는 여대생, 사무계통 직장여성, 기능계통 직장여성, 신혼주부 등 연령과 사회적 기반이 완전히 다른 4개 집단으로 나누어 실시되었습니다. 보통 연령대나 직업군에 따라 선호하는 미남형 배우나 스타가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최불암은 이 모든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 여대생 집단: 이정길, 한진희, 오지명, 김무생 등 당대 최고의 미남·연기파 배우들을 제치고 선호도 1위에 올랐습니다.

▪ 사무계통 직장여성: 김세윤, 한진희 등 쟁쟁한 인기의 배우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 기능계통 직장여성: 김세윤, 이순재, 박근형, 한진희 등을 제치고 역시 가장 좋아하는 배우 1위로 뽑혔습니다.

▪ 신혼주부: 김세윤, 한진희, 김무생 등을 뒤로하고 최고의 인기 배우로 선택되었습니다.

20대 대학생부터 직장인, 이제 막 살림을 차린 신혼주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다는 점은 그가 단순히 외모나 일시적인 스타성에 의존한 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합니다.

최불암이라는 배우가 담아낸 인간적인 따뜻함과 신뢰감은 이미 50년 전부터 한국 사회가 가장 갈망하던 이념적 어른의 모습이었습니다.

박 반장에서 김 회장까지

최불암의 연기 인생을 관통하는 두 개의 굵직한 줄기는 한국 방송사 그 자체였습니다.

1. <수사반장> (1971년 첫 방송 ~ )그가 맡은 '박영한 반장'은 범죄를 단죄하는 냉혹한 수사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서슬 퍼런 사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애환과 사회적 아픔을 함께 울어줄 줄 아는 정의롭고 따뜻한 형사였습니다. 범인을 잡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살피던 그의 눈빛은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2. <전원일기> (1980년 첫 방송 ~ )양촌리 '김 회장' 역을 통해 최불암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족관과 공동체 정신을 대변하는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고향과 전통을 잃어가던 80년대, 그는 집안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마을의 지혜를 나누는 어른으로 자리하며 고단한 국민들에게 깊은 위안과 향수를 선물했습니다.

안방극장을 넘어 우리네 '밥상'의 이야기꾼으로

드라마를 통해 한국인의 아버지가 된 그는 2011년부터 KBS <한국인의 밥상>을 통해 또 한 번 국민 곁으로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전국 각지 구석구석을 누비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각 고장의 음식과 그 안에 녹아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조명했습니다. 화려한 진행이 아닌, 타인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그의 모습은 단순한 진행자를 넘어 한국의 정서와 생활문화를 전해주는 시대의 '휴먼 스토리텔러' 그 자체였습니다.

영원한 '국민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함께 나누었던 최불암 선생은 지난 10월 29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향년 87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습니다.

부고가 전해진 후, 문화예술계는 물론 온 국민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작곡가 윤일상, 팝페라 가수 임형주 등 각계 인사를 비롯해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시청자들은 고인이 남긴 온화했던 유산을 떠올리며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1977년의 조그만 설문조사가 보여주었듯, 그는 특정 세대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에 신뢰와 친근함을 주었던 유일무이한 배우였습니다.

시대가 흘러 방송 환경이 숱하게 변한다 해도 우리는 그를 정의로웠던 '박 반장'으로, 온화했던 양촌리 '김 회장', 그리고 우리네 밥상에서 삶의 온기를 나누던 '따뜻한 어른'으로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한국 방송사의 거목이자 수많은 국민의 가슴속에 새겨진 영원한 '국민 아버지', 최불암의 이름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겨레의 마음속에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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