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서울시에서는 쓰레기가 넘쳐나
"돈을 줘도 안 와요"
1973년 금호동에 살던 50대 문찬숙 씨의 최대 고민은 '연탄재'였습니다. 여름엔 열흘마다 오던 청소원들이 김장철이 되자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기 때문이죠.
당시 시민들은 정해진 수거료 외에도 청소원들에게 매달 400원씩 별도의 팁을 얹어주며 제발 좀 와달라고 사정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써도 허사였습니다.
숭인동 산동네 주민들은 화장실을 비우기 위해 수거원에게 통사정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변두리 지역 시민들에게 청소 서비스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숫자로 보는 1973년 서울의 쓰레기 처리 난
당시 서울은 매년 인구가 3%씩 늘어났지만 행정 시스템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 배출량: 당시 서울 인구 670만 명은 매일 670만 리터의 분뇨와 732만kg의 쓰레기를 쏟아냈습니다. (1인당 하루 분뇨 1.1L, 쓰레기 1.2kg 배출)
- 수거 한계: 서울시의 장비(쓰레기차 401대, 분뇨차 232대)로는 하루 550만 명분의 분뇨와 600만kg의 쓰레기만 처리가 가능했습니다.
- 방치되는 오물: 매일 분뇨 120만 리터(트럭 240대분)와 쓰레기 132만kg(트럭 219대분)가 길거리에 남겨졌습니다. 결국 시민들은 이를 땅에 묻거나 슬쩍 흘려보내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전체 시민의 약 16~17%가 수거 혜택에서 소외된 셈이었습니다.
◎수세식으로 – 도시의 근본적 개혁
서울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3년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합니다. 낡은 쓰레기차 53대를 교체하고 인부 200명을 충원했지만 밀려드는 인구 앞에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수거율은 여전히 84%에 머물렀습니다.
- 화장실의 현대화: 시내 중심가 변소 2만 5천 개를 수세식 또는 수조식으로 전격 개량했습니다.
- 신축 건물 의무화: 새로 짓는 모든 건축물에는 반드시 수세식 또는 수조식 변소를 설치하도록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1973년 동아일보에 게재된 기사를 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매일 아침 깨끗한 거리'와 '쾌적한 수세식 화장실'은 50년 전 시민들이 겪었던 불편함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점진적 개혁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서울시 환경국장이 던진 "내년에도 변두리 시민들의 불편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공공 서비스가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