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기혼 남녀의 결혼 만족도 조사
1972년 대구,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던 수많은 가정의 문턱 너머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집은 밖에서의 피로를 풀고 대접받는 안식처였을지 몰라도 아내에게는 끝없는 가사노동과 가부장적 압박이 이어지는 고단한 일터였습니다.
1972년 대구 신명여중 교사 최외선 씨가 경북대학교 이상욱 교수의 지도 아래 발표한 '우리나라 부부간의 적응상태 및 행복도 조사'는 당시 한국 사회가 당연하게 여겼던 가부장적 가족문화의 그늘과 기혼 여성들의 숨겨진 고통을 수치로 명확히 증명해 준 매우 흥미롭고 파격적인 기록입니다.
결혼 5~15년 차에 접어든 기혼 남녀 353명(남성 171명, 여성 182명)을 대상으로 48개 항목을 조사했습니다. 당시 부부들의 솔직한 생각과 결혼생활의 모습을 통계 자료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고 그 의미를 짚어봅니다.
행복과 만족도의 극명한 동상이몽(同床異夢)
조사 결과에서 가장 압도적인 대목은 동일한 결혼생활을 바라보는 남녀의 극단적인 온도 차였습니다. 남편들이 느끼는 높은 만족감의 이면에는 아내들의 희생이 자리 잡고 있었음이 수치로 드러납니다.
◎ 행복도 인식: "불행한 남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남성: 응답자의 무려 80%가 자신의 결혼생활을 "행복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행복하지 않다"거나 "불행하다"고 응답한 남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0%)는 사실입니다. 당시 남성들에게 결혼은 안정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최상의 제도였음을 보여줍니다.
▪ 여성: 반면 자신의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답한 여성은 60%에 그쳤습니다. 심지어 23%의 여성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응답했습니다.
▪ 격차: 남녀 간 행복 인식 격차는 무려 20%포인트로 같은 집에 살면서도 남편과 아내가 느끼는 삶의 질은 판이했습니다.
◎ 결혼생활 만족도: 불만족 비율, 여성이 남성의 4배
▪ 전체 만족도: 남성은 94%가 현재 결혼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했으나 여성의 만족도는 76%에 머물렀습니다.
▪ '매우 만족'의 차이: "매우 만족한다"는 열렬한 응답은 남성이 38%였던 반면 여성은 17%로 두 배 이상 격차가 났습니다.
▪ 불만족 비율: 결혼생활에 불만이 있다는 응답은 남성이 6%에 불과했으나 여성은 24%에 달해 여성의 불만족 비율이 남성의 4배에 육박했습니다.
참았던 아내들의 속마음: 별거·이혼 고민과 후회
1970년대 초반은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극도로 엄격하고 법적·경제적 제도 역시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던 시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여성들이 마음속으로 이미 이혼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 별거 및 이혼 생각 경험
▪ 남성 : 18% (진지하게 고민 : 3%)
▪ 여성 : 36% (진지하게 고민 : 10%)
▪ 별거 및 이혼 고려: 여성 응답자의 36%가 별거나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중 10%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응답했습니다. 반면 남성은 이혼/별거를 생각한 비율이 18%, 진지하게 고민한 비율은 3%에 그쳤습니다.
▪ 결혼에 대한 후회: "결혼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이 38%인 반면 여성은 29%에 불과했습니다. 즉, 여성 10명 중 7명은 결혼생활 중 한 번 이상 결혼을 후회했던 셈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 배우자 선택의 엇갈린 길
가장 해학적이면서도 씁쓸한 대목은 바로 "다시 태어난다면 현재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 "현재 배우자와 반드시 다시 결혼하겠다": 남성과 여성 모두 32%로 동일하게 나타났습니다.
▪ "다른 사람과 결혼하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겠다":
▪ 남성: 21%
▪ 여성: 37%
남성의 경우 현재 배우자에게 불만이 있더라도 '결혼'이라는 틀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다른 여성과의 재혼을 떠올린 반면 여성들은 현재의 배우자를 피하거나 아예 '결혼 제도' 자체에서 벗어나 홀로 살기를 희망하는 비율(37%)이 훨씬 높았던 것입니다. 이는 여성들에게 결혼이 주던 중압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1972년은 남성의 '생계부양(남성 외벌이)'과 여성의 '가사 및 양육'이라는 성별 역할 분담이 철저하게 정당화되던 시대였습니다.
▪ 남성의 시각: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노동에서 면제된 채 돌봄을 받는 구조였기에 80%의 높은 행복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여성의 시각: 경제적 종속과 더불어 무급 가사노동, 시댁과의 관계, 남성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서서히 소외되어 갔고, 이것이 높은 불만족(24%)과 이혼 고민(36%)으로 분출되었습니다.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활동 참여가 크게 늘고 평등한 부부관계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1972년 조사에서 밝혀진 "같은 가정 안에서 남녀가 서로 다르게 느끼는 불균형의 온도 차"는 오늘날 맞벌이 가구 내 가사노동 분담 문제나 가치관의 갈등이라는 또 다른 형태로 여전히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