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스포츠 환경, 70년대는 어땠을까?

오늘날 프로 야구, 프로 축구, 프로 농구, 프로 배구 등 다양한 프로 경기들이 등장하면서 운동선수들의 삶은 크게 개선됐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운동 선수로서만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경향신문이 1979년 1월에 운동선수 가운데서도 비교적 가장 잘나가는 국가대표 선수 194명을 대상으로 생활 수준을 조사한 결과가 이채롭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평균 월급은 월 14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가장 많은 월급을 받는 종목으로는 레슬링이었는데, 19만 4,300원이었으며, 가장 적은 급료 종목으로는 배드민턴과 궁도(양궁)선수로서 월급이 10만 원 선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배드민턴과 양궁은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종목으로 자리 잡았으나, 과거에는 그리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가장 많은 월급을 받은 선수로는 펜싱 1명과 사격 1명 등 총 2명이 30만 원씩 받았다고 합니다. 이는 대표 선수 평균 월급보다 2배 많은 셈입니다.

그 뒤로  레슬링 1명, 사격 1명이 각각 28만 원 씩 받았고, 배드민턴 1명, 테니스 1명, 복싱 1명, 궁도(양궁) 1명, 육상 1명, 축구 1명, 사격 8명 등 총 22명이 5만 원 이상 ~ 10만 원 이하의 적은 급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사격에서 급료를 적게 받은 선수들이 많은 이유는 병역복무중인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생활 수준을 대체로 중간 정도라고 여겼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국가대표로서 만족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겨우 61%에 그쳤고, 자녀에게 운동선수를 권유하겠다는 의견은 단지 3%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47%는 자녀가 운동선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만스러운 점으로는 은퇴 후의 생활 보장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47%로 가장 많았습니다. 현재 처우가 빈약하다는 지적은 13%를 차지했으며, 개인 생활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생활에 대한 불만은 12%였습니다.

또한, 좋지 못한 운동시설에 대한 불만이 8%, 고된 훈련에 대한 어려움이 6%로 나타났습니다. 이 외에도 교양 교육 부족, 병역 혜택 미흡, 해외 전지훈련 부족, 코칭 스태프에 대한 불만, 간식 부족 등이 언급되며, 이는 1970년대 운동선수들이 겪었던 열악한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휴식 없는 강훈으로 개인생활 없는 희생으로 진절머리를 냈으며 은퇴 후에는 코치나 감독보다는 사업가의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