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변호사들의 명암
오늘날 변호사 시장이 무한 경쟁과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지만 사실 어느 시대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죠.
197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 변호사는 단순히 돈 잘 버는 직업을 넘어 '사(士)자 직업의 끝판왕'이자 사회적 선망을 한 몸에 받는 시대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편에는 오늘날의 '청년 변호사'들이 겪는 고민만큼이나 깊은 고민을 하던 '생계형 변호사'들도 존재했습니다.
1977년 1월 18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한 달 월급 10만 원이 거금이었던 시절에 펼쳐진 변호사 업계의 짜릿하고도 씁쓸한 풍경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천상계의 삶: 재벌 사건 하나면 집 한 채가 뚝딱
1977년 당시, 이른바 '일류'로 불리는 전관 출신이나 대형 변호사들의 수입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 월수입 500만 원 시대: 당시 일반 직장인의 평균 월급이 10만 원 내외였음을 감안하면 이들은 남들 4년 치 연봉을 한 달 만에 벌어들인 셈입니다.
· 황금의 수임료: 굵직한 재벌가 사건이나 대형 형사 사건의 경우, 건당 수임료가 1,000만 원에 달했습니다. 당시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에 육박하는 금액을 단 한 건의 계약으로 벌어들인 것입니다.
· 부의 상징, 골프와 자가용: 당시 자가용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변호사의 절반이 직접 차를 몰고 다녔으며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골프를 즐기며 인맥을 관리했습니다.
중간층의 현실: 겉은 번지르르, 속은 실속 찾기 바빠
하지만 모든 변호사가 금방석에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딱 중간 정도의 성적표를 거두던 중위권 변호사들의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지출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7년 중위권 변호사 가계부 (월 기준)]
· 총 수입: 약 100만 원 내외
주요 지출 내역:
· 사무실 임대료 (14평): 10만 원 (직장인 한 달 월급 수준)
· 인건비 (사무장 1명, 여비서 1명): 20만 원
· 자가용 유지비: 20만 원 (품위 유지를 위한 필수 비용)
· 경조사 및 잡비: 10만 원
· 실제 가용 소득: 약 40만 원
물론 40만 원도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고소득(직장인의 4배)이었으나 변호사라는 직업적 위신을 지키기 위한 '품위 유지비'가 수입의 절반 이상을 갉아먹는 구조였습니다.
눈물 젖은 법복: 임대료 걱정에 딸까지 사무실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당시에도 '빈곤층 변호사'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 가족 경영의 애환: 사무직원을 고용할 돈이 없어 자신의 딸을 사무실 경리로 채용해 겨우 꾸려나가는 눈물겨운 사례가 기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임대료 체납: 법조 타운의 비싼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해 건물주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는 변호사들도 많았습니다.
· 양극화의 시작: 1970년대에도 이미 법조계 내에서는 "버는 사람만 벌고, 못 버는 사람은 굶는다"는 소득 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화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77년과 2025년의 데칼코마니
1977년의 변호사 수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당시 변호사 총수는 800여 명 수준) 시장의 냉혹한 원리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2025년 현재는 변호사 4만 명 시대를 맞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희소성'이라는 무기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전문직이라고 해서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보장받지는 못한다'는 1977년 동아일보의 경고는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날의 법조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