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여성 취업의 현실 - 1970년대
반세기 전,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대변되는 압축 성장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뜨거운 개발의 시대 한가운데에는 배움의 열망을 품고 대학 문을 나선 대졸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품었던 가장 뜨거운 꿈은 다름 아닌 '은행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깨끗한 근무 환경과 안정적인 급여가 보장되는 은행은 당시 지성인이라 불리던 여대생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일터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차가웠습니다.
은행의 문은 매우 좁았고, 실력을 펼쳐보기 전에 기회를 얻지 못해 좌절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의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결혼과 동시에 일터를 떠나야 하는 '퇴직각서'가 공공연하게 존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갈망했던 대졸 여생들의 좌절
1970년대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자원개발연구소가 발표한 「대학졸업 여성의 취업구조와 취업의식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희망하는 여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 부동의 1위는 은행원이었습니다.
당시 은행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직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대졸 여성들이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장으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실제 채용에서는 대졸 여성들에게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 소극적인 채용 규모: 금융기관들은 대졸 여성 채용에 극히 소극적이었습니다. 여성 채용은 주로 고등학교 졸업 학력의 '여행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대졸 여성만을 위한 공채나 전문 직무 배치는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 기회의 원천 봉쇄: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기회였습니다. 당시 금융권과 대기업 채용 공고에는 '남성에 한함'이나 '병역 필한자'라는 조건이 붙어 있어 여성들은 지원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하는 직장은 있었지만 지원할 기회조차 없었던 현실은 많은 여대생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숫자로 보는 1970년대 여성 경제활동의 현주소
당시 여성의 노동은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이었으나 그 질적인 면을 살펴보면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습니다.
▪ 낮은 경제활동참가율: 1970년대 전반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36.2%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여성 3명 중 2명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전업주부 혹은 가사 노동에만 전념했음을 보여줍니다.
▪ 단순 노동 중심의 취업 구조: 경제활동에 참여한 여성의 대다수는 농림수산업의 무급 가족 종사자이거나 섬유·가산·가발 공장 등 제조업의 저임금 생산직 혹은 단순 사무 보조직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관리직이나 고도의 전문 지식을 요하는 전문직군에서 여성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 고등교육 수혜율 1%의 벽: 당시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의 비중은 전체 여성 인구의 약 1% 안팎에 불과했습니다. 극소수의 여성만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이 아까운 고급 인력들조차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제약 때문에 전공을 살려 사회로 진출할 통로를 찾지 못했습니다.
극단적으로 좁았던 직업 지도: '여성 전략직종'의 실태
1970년대 조사 결과는 당시 여성이 진출할 수 있었던 직무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대졸 여성이 100% 취업할 수 있는 이른바 '여성 전략직종'은 영양사가 유일했습니다. 뒤이어 여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거나 진입이 용이했던 직종들은 다음과 같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 간호사: 97%
▪ 속기사 및 타자원: 95%
▪ 전자계산기 조작원 및 비서: 50% ~ 60%
이 직종들의 공통점은 당시 기준에서 여성 고유의 섬세함이나 지원적 역할에 적합하다고 여겨진 분야들이었다는 점입니다.
반면, 이공계나 사회과학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여성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 자연과학자, 통계학자, 경제학자, 회계사, 법무 종사자 분야에서 여성 비율은 사실상 '0%'에 가까웠습니다.
▪ 대학에서 수학, 물리학, 경제학, 법학을 전공한 여성들이 졸업 후 갈 곳은 컴퓨터 본체가 아닌 단순 데이터를 입력하는 키펀처(타자원)나 비서직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기술과 학문의 영역은 철저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시대였습니다.
'결혼=퇴직'이라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경력을 단절시키는 가장 강력한 족쇄는 사회 관행과 제도적 차별이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결혼퇴직제'가 당연한 관례로 통용되었습니다.
▪ 결혼과 동시에 퇴직: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에서는 여직원이 결혼할 경우 자동 퇴직한다는 내용의 '사직서'나 '서약서'를 입사 시 미리 작성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미혼 시절 힘들게 들어간 직장이라 할지라도 결혼과 동시에 강제로 일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 M자형 고용곡선의 기원: 이 시기 여성의 고용 형태는 20대 초반에 정점을 찍었다가 결혼과 출산 시기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바닥을 치고 자녀를 키워놓은 후 40대 이후에 단순 저임금 노동으로 복귀하는 전형적인 'M자형 고용곡선'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경력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관리자로 성장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환경이었습니다.
결국 1970년대는 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지적 역량과 자아실현의 욕구가 분출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시스템과 고정관념이 이를 담아내지 못했던 '기회의 결핍 시대'였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성별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온전히 꽃피우지 못했던 반세기 전 대졸 여성들의 삶은 오늘날 한국 사회 여성 경제활동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뤄낸 튼튼한 밑거름이자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단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