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 난?
예나 지금이나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들은 하숙비나 방값, 각종 생활물가에 시달리곤 합니다. 현재도 서울시내 대학생들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 가격이 매년 치솟아 대학생들의 시름을 더하곤 하는데요.
지금으로부터 55년 전에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도 고물가에 시름하기는 매한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과외 이외에 마땅한 아르바이트 자리도 흔하지 않던 시절입니다.
조선일보 1969년 3월 9일 자 기사에 따르면 당시 입시 개혁으로 과외 아르바이트가 줄어 울상인 대학가 풍경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직업보도소에 가정 교사직을 원하는 학생들이 매일 30명이나 대기했지만 정작 구인 학부형은 3, 4건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거기다 학기 초에 하루 평균 150여 명의 아르바이트생으로 붐비던 신문사 광고부에도 20여 명으로 줄어들어 아르바이트 구직난을 실감케 했답니다.
고려대 의예과에 입학한 한 학생은 시골집에서 쌀 20가마를 팔아 서울로 왔는데 등록금이 57,850원, 하숙비 15,000원, 교재비, 잡비와 교통비로 19,000원을 쓰면 남는 게 7,000원에 불과했다고 하네요.
대학가 주변의 하숙비 또한 껑충 뛰어 서울대 인근 명륜동의 경우 하숙비가 지난 학기보다 1,000원 오른 8,000원, 고려대 주변 제기동 일대는 7,500원, 신촌 일대는 독방일 경우 15,000원이었습니다. 불과 4년 전에 하숙비가 4,500원이었다는 점을 비교하면 4년 새 하숙비가 2배 뛰어 대학생들의 곤궁한 생활을 더욱 어렵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