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대학생들의 가치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격동의 1960년대를 살아가던 청년들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 전체가 숨 가쁘게 재편되던 1962년 11월, <경향신문>에는 당시 청년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가치관 조사 결과가 실렸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핵심 인재로 주목받던 육군사관학교 생도와 새로운 시대를 꿈꾸던 연세대학교 등 일반 대학생들의 생각을 담은 이 조사 결과는 오늘날 청년들의 고민과 닮은 점도 있으면서 당시 1960년대의 시대 분위기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안한 사회, 그러나 잃지 않은 미래의 희망
당시 청년들이 마주한 사회적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들의 상당수는 우리 사회를 '불만스럽고 불안정한 사회'로 진단했습니다.
▪ 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 조사 결과, 남학생의 47%, 여학생의 58%가 현재의 사회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여학생의 응답 비율이 더 높아, 당시 사회의 불안정한 현실을 남학생보다 조금 더 크게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과도기적 인식과 낙관론: 하지만 청년들은 현실을 마냥 비관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시 사회를 낡은 질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변화의 과정으로 바라봤습니다.
특히 나라의 미래를 이끌 인재로 꼽히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35%가 앞으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며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인간상: '인간미'와 '내면의 단단함'
1962년의 대학생들이 생각한 '가장 바람직한 대학생의 자질'과 추구하는 가치에서는 남녀 간, 그리고 학교 간의 뚜렷한 시각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 여학생이 꼽은 최고의 덕목, '인간미': 여학생의 28%는 '인간미를 가진 대학생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응답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외에도 때 묻지 않은 순진성, 비판적 사고력, 자신감, 그리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다양한 취미 활동을 중요한 자질로 평가했습니다.
▪ 육사생들의 내면 중시 경향: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외적인 조건이나 환경보다는 개인의 성격과 기질 등 '내면적인 요소'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장차 군을 이끌 지도자로서 스스로의 인격 도야에 집중했던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소박하고 현실적인 개인의 목표
출세나 부(富)를 쫓을 것 같은 청년들의 성공 방정식과 달리 당시 대학생들의 소망은 의외로 학구적이고 내면 지향적이었습니다.
▪ 학문에 대한 열정: 남녀 대학생을 불문하고 이들이 꼽은 가장 큰 희망은 바로 학문에 대한 자신감이었습니다. 대학생 본연의 임무인 학업 성취에 가장 큰 가치를 둔 것입니다.
▪ 육사생의 목표: 육사 생도들 역시 군인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맞는 올바른 성격과 기질을 갖추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 권력과 재물에 대한 낮은 관심: 반면 사회적 지위나 권리, 많은 돈, 건강한 몸, 혹은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 등은 상대적으로 큰 관심사가 아닌 것으로 나타나 당시 청년들이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우위에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업관: 낭만적인 여학생과 공공을 바라본 육사생
직업 선택에 대한 생각에서도 남녀의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당시 어떤 직업이 인기 있고 선호됐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 취미와 적성: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성향은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13%포인트나 높게 나타나 여학생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개인의 만족과 자아실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보여줍니다.
▪ 최고의 인기 직종, '교사': 남녀 대학생의 27%가 희망 직업으로 교사직을 선호했습니다. 교직이 지닌 사회적 존경과 안정성이 당시 청년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한편 남학생의 21%는 특정 전문직 분야로 진출하기를 원했습니다.
▪ 육사생들의 다양한 꿈: 육사생들은 군인이 기본 진로였음에도 불구하고 11%는 외교관을, 5.9%는 정치가를 희망하는 등 스펙트럼이 넓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정치인, 공무원, 군인 등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공공 분야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인생관과 연애관: 거대 담론보다 실속, 그리고 결혼
그 시절은 낭만을 중요하게 여겼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생을 바라보는 생각이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습니다.
▪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설계: 당시 청년들은 인류를 위해 큰일을 하거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보다는 자신의 삶을 현실적으로 계획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남학생들은 양심을 지키고 의지 있게 살아가는 삶을 꿈꿨고, 여학생들은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는 삶을 바랐습니다.
▪ 남학생들의 독특한 연애관: 가장 반전이 있는 부분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인식입니다. 일반 남학생 가운데 '연애는 결혼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고작 7%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에게 연애는 즐거운 감정의 교류이거나 혹은 결혼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별개의 과정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 여학생과 육사생의 연애관: 반면 육사생과 여학생들은 연애를 결혼의 아주 중요한 필수 전제조건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남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높았습니다.
요약하자면 1962년의 청년들은 혼란스러운 사회 현실에 불만과 걱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잃지 않았습니다.
권력이나 큰 부를 쫓기보다는 공부를 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며,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당시 조사로 청년들이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려 했던 건강한 세대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