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보다 수입이 좋았던 군고구마 장사
"하다못해 고구마 장사라도 해야지!"
장기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 흔히 이렇게 핀잔을 주곤 하죠.
하지만 1960년대의 상황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당시 군고구마 장사는 단순한 생계형 노점이 아니라 웬만한 월급쟁이 못지않은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습니다.
시간의 제약도 비교적 적고, 특별한 기술 없이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서민층 사이에서는 꽤 매력적인 생업으로 여겨졌습니다.
찬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골목을 채우던 구수한 냄새, 그 드럼통 연기 뒤에 숨겨진 1960년대 '군고구마 경제학'이 경향신문 1962년 12월 13일 자에 흥미롭게 실렸습니다.
1962년, 군고구마 장사가 '꿈의 직업'이었던 이유
1.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낫다? 놀라운 수익 구조
당시 군고구마 장사는 단순한 생계형 노점 그 이상이었습니다. 숫자상으로 보면 지금의 '대박 창업' 부럽지 않은 수익성을 자랑했습니다.
· 투자금: 약 5,000원 (드럼통, 연탄 장치 1,000원 + 손수레 1,500원 + 운영자금 2,500원)
· 일일 수익: 고구마 12관 판매 시 순익 120원 + 땅콩 판매 순익 약 200원 = 하루 약 300원
· 월 수입: 약 9,000원
당시 일반 직장인의 월급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으며 단 한 달만 열심히 장사해도 초기 투자금의 1.8배를 뽑아낼 수 있는 '고효율 사업'이었습니다.
1962년 당시 쌀 한 가마니(80kg) 가격은 약 3,000원, 9급 공무원(당시 5급) 초임 호봉이 약 6,000원.
2. 고구마만 팔면 하수! 영리한 교차 판매
성공한 고구마 장수들은 전략가였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드럼통 옆에 고소한 땅콩과 캐러멜을 함께 배치했습니다.
· 땅콩의 마법: 고구마보다 마진율이 훨씬 좋았습니다. 땅콩 한 말을 팔면 최대 270원까지 남았는데 이는 고구마 25관을 팔아야 얻을 수 있는 수익과 맞먹었습니다.
· 미니 편의점: 일부는 작은 구멍가게를 겸하며 하루 수입을 500원(월 15,000원 상당)까지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3. '전 국민의 주식' 고구마의 위상
당시 고구마 생산량은 연간 1억 9,000만 관. 정부가 술 원료(주정)로 사들이고도 하루에 33만 관이 식용으로 팔려나갔습니다.
· 주요 타겟: 돈이 귀했던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부터 끼니를 때워야 했던 공장 여공, 야근하는 노동자들까지. 고구마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서민들의 소중한 '한 끼 식사'였습니다.
고구마 장수만 아는 '직업병'
이 장사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향기 습격'이었습니다. 온종일 코끝을 자극하는 군고구마와 볶은 땅콩의 향기를 이기지 못하고 장사꾼 본인이 야금야금 먹어 치우는 게 문제였습니다.
"남 주려고 구웠다가 내 배만 채우네!"
고구마의 전분과 땅콩의 지방을 과하게 섭취한 나머지 소화불량에 걸려 다음 날 강제 휴업을 하는 웃픈사례도 기사에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드럼통 연기에 담긴 시대상
학력도 기술도 필요 없었습니다. 정직하게 연탄불을 피울 성실함과 기초적인 셈법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기회의 문.
1962년의 군고구마 장사는 배고픈 서민들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가난한 가장들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이 되어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편의점 기계에서 만나는 매끈한 고구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치열하고도 뜨거웠던 삶의 향기가 그 시절 드럼통 속에 가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