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이혼 사유 1위는 남편 학대
지금은 이혼이 큰 문제는 아니지만 1910년대만 하더라도 이혼은 굉장한 사건이었죠. 1910년대 이혼에 대한 편견은 지금보다 더 심했었고,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주홍글씨가 새겨지곤 했어요.
그렇다면, 그 힘들다는 이혼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에 이혼 사유 1위는 남편의 학대, 2위는 남편의 행방 불명이 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이혼이 급증한 게 큰 뉴스거리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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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21년 7월 2일)에 따르면 이혼 소송 건수는 1915년에 830건이었던 것이 1916년에 905건, 1917년에 951건으로 매년 증가하더니 1918년에는 1천142건으로 1천건을 넘어섰고, 1919년에는 1천218건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이혼 사유 1위는 남자의 학대가 가장 컸으며, 2위는 남편의 행방불명으로 인한 생활의 곤란함이 주원인이었다고 하네요.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많은 남자들이 전쟁터에 또는 독립투쟁에 나섰던 시기라 행방불명이란 의미가 와 닿네요. 3위는 남편의 투옥으로 인한 이혼 소송이 많았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에도 이혼 소송을 하면서 위자료를 청구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참고로 2020년 우리나라 법원에 접수된 이혼 소송 건수는 667만 건에 달합니다. 과거 통계가 부실했다 하더라도 지금하고는 비교가 안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