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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대한민국 박사는 몇 명?
대한민국의 성장은 말 그대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기적'이었습니다. 잿더미 위에서 우리가 가진 유일한 밑천은 사람이었고, 그 사람을 키워내는 힘은 교육에서 나왔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61년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의 절박하면서도 놀라운 풍경을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 "펜은 칼보다 강했고, 박사 학위는 국력보다 귀했다"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잠시, 6·25 전쟁이 휩쓸고 간 한반도에는 공장도 자원도 심지어 내일 먹을 쌀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배고픔 속에서도 자식들의 책가방 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이 선택한 필살기는 바로 '인적 자원 올인' 전략이었습니다. "똑똑한 사람 한 명이 나라를 살린다"는 믿음 아래 시작된 고등교육의 역사는 1961년 '박사 100명 시대'를 거쳐 오늘날 '연간 박사 2만 명 시대'라는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그 드라마틱한 시작점의 기록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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